'카인의 후예’, 『황순원 소설선- 카인의 후예』, 황순원, 문학과 지성사, 2006
해방, 증오를 예비한 시기
해방, 그토록 기다려 왔던 해방,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던 시기, 사람들의 꿈과 민족의 염원이 되살아나던 생생하고 역동적이던 그 시절! 하지만 해방은 짧았고,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오지 않았다. 아니, 해방은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방식의 혼란과 폭력이 일제를 대신했다. 그것은 해방이 가져다 준 욕망이었다. 압제자가 사라진 공간에 들어선 건 욕망이었고 이를 제어할 집단 지성이 발휘되지 못했다. 대신 기구(apparatus)가 욕망을 등에 업고 압제자를 대신했다. 욕망은 등 뒤에 숨어있었지만 이데올로기가, 국가가 앞장섰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카인의 후예’는 해방 직후 북한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소설이기도 하고 1946년을 기록한 일종의 역사물이기도 하다. 기록 문학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지. 금세 가라앉아 버린 해방의 들뜬 분위기와 그것이 남기고 간 자리를 채운 욕망들, 끊임없이 채보는 인간 군상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조정래가 『태백산맥』에서 ‘왜 농민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야만 했나’를 보여주었다면, 황순원의 소설은 지주의 입장에서 그 시기를 바라보려고 한다. 물론 이것이 당시 지주의 입장을 대변하고 일제시대 핍박 받던 소농들에 대해 편견을 가졌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사람보다 기계적인 판단이 앞섰던 시기를 설명하고자 작가가 지주의 눈을 빌렸을 뿐이다. 왜 지주들은 고향을 등지고 남한으로 내려와야 했으며, 가족을 잃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에서 사라지고 결국에는 불신과 증오를 품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 ‘훈’의 사촌동생 ‘현’은 말한다. “(중략) 그깟 말단에 있는 놈 한두 놈 없애본댔자 소용없다구요.” 해방의 짧은 순간이 지나고 이미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잠정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지주의 이미지는 악덕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공동체와는 분리되어 있는 존재다. 그들은 소작농을 경제적으로 착취하지 않고는 살지 못할 어쩌면 없는 게 더 나은 존재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지주도 어쨌든 마을의 구성원이었으며, 무엇보다 해방이라는 변화의 시기에 맞춰 조정되어야 할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들어온 것은 정교한 법체계라든지 반성을 이끌어 낼 공동체의 논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벼랑 끝으로 몰렸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죽음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그럴수록 죽음은 가까이에 있었다.
지주의 아들(훈)이라고 해서 마냥 악독한 것은 아니며 변화에 저항하고자 한 게 아니다. 지주를 도운 마름 출신 도섭 영감은 농민 위원장을 맡기까지 한다. 오작녀의 경우를 보면 그녀에게는 훈과 자유가 있었을 뿐 계급은 거리가 멀었다. 계급 갈등으로 단순히 치환할 수 없는 수준의 다양한 양태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주를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적으로 해결해야 할 요소가, 복잡한 사정이 존재했으나 누구나 살고 싶어 했고 이왕이면 누구나 권력을 쥐고 싶어 했던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해방’의 시기는 지나갔다. 남은 건 새로운 ‘당의 구속력’이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인식하지 못했다. 도섭 영감과 같은 지주들을 처단하는 작업은 사실상 ‘당’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혹은 ‘당’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야 했던 마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이 판단한 것이 정의였다. 당의 권력자들이 “너희가 권력이다”라고 말하는 모순 속에서, 그 권력을 조금이나마 휘두르려고 하는,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함이 오히려 갈등의 불을 피웠다.
죽음의 잔치는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잔치’,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 낼 가장 좋은 기회는 전쟁이었고, 전쟁은 증오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1946년은 안타깝게도 증오가 해방을 대체해버렸다. 각자의 욕망을 이루고자 했던 남한, 북한, 미군정, 소련 모두 사람들을 자신의 체제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그렇게 분리된 상황에서는 편 가르기만이 남아버렸다. 해방을 위한 연대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이 취할 선택은 욕망에 따라 권력에 붙는 것이었으며 이는 내 편이 아닌 이에게 증오를 예비하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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